미술사
【한국미술사】 사유의 방의 반가사유상
herald-lab
2024. 10. 26. 16:5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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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유의 방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한 방으로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이다.
-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젼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전시
- 홀은 8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, 5장 "마침내 마주하며"에 오른쪽에는 구 83호가, 왼쪽에는 구 78호가 배치됨[그림 1]
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(국보 78호)
Gilt-bronze Pensive Maitreya Bodhisattva(1962-1)
- 시대: 삼국시대(6세기 초반) ⇒ 출토지가 불명으로 제작국에 대한 논란이 있음. 고구려, 백제, 신라 제작설 등이 모두 유력
- 고구려 제작설: 뛰어난 조형성 및 화려한 옷 장식(삼면보관 등) 등을 근거로 중국 북위 또는 중국 동위(534-550)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 불상으로 파악
- 백제 제작설: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는 보물 331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[그림 3]과 유사하게 인체를 길쭉하게 표현한 것을 근거로 제작지 추정
- 신라 제작설: 신라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근엄함, 어긋난 신체 비례, 옷주름의 도식화 등을 근거로 주장
- 높이 81.5cm, 무게 37.6kg
-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의 자세 +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붙인 채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대고 깊은 사유를 하는 모습
- 2017년, 불상 표면의 부식을 막고 균열 부위를 보강하는 보존처리 + 안정화 과정에서 표면 이물질이 제거되면서 불상의 새김이 좀 더 분명해짐 + 우측 어깨 옷자락 보강
삼면보관(三面寶冠)
보살상에서 자주 보이는 머리 부분의 장식으로 두부의 정면과 좌우측면에 꽃무늬 등을 나타낸 장식이 특징이다.
- 삼면보관의 초생달과 둥근 해 장식은 일월식 장식으로 이란의 사산조 페르시아 왕관에서 유래됨
- 이후 사산조 왕관의 일월식은 중국의 북제와 북주의 보살상에 보편화된 장식으로 활용됨
- 보관 아래에는 일반적으 관대(머릿대)가 두 가닥으로 어깨 위에까지 내려옴
- 삼면보관은 삼면두식이라고도 불
피건(被巾)
보살상 중 날개처럼 뻗어있는 옷깃을 중국에서는 피건이라 부름
- 특히 남북조 시대의 북제 후기에서 동위 초기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천의 형태임
군의(裙衣)
보살이 입은 치마형태의 옷을 군의라고 함
-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군의는 층단식 주름과 띠 매듭이 특징적인데, 두 상징이 매우 예리하게 표현되어 있어 반가사유상 자체에 강인한 인상을 줌
- 또한 매우 형식적인 옷 주름 표현은 중국 동위의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함
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(국보 83호)
Gilt-bronze Pensive Maitreya Bodhisattva(1962-2)
국보 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은 고개를 약간 숙여 사유하는 모습으로 머리에는 삼산관(三山冠)을 쓰고, 얼굴은 풍만하며, 고졸한 미소에 이상화된 신체 비례 등이 특징적이다.
- 시대: 삼국시대 (7세기 초반) ⇒ 도굴꾼이었던 일본인 가지야마 요시히데가 불상 출토지에 대해 밝히지 않으며 미상으로 남음, 단 신라 제작 가능성이 매우 유력
-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한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[그림 9]이 신라지역에서 발견됨
- 신라 도래인 하타씨(진하승)가 창건한 고류지(광륭사)의 목조반가사유상이 신라에서 제작되어 일본에 전래된 사례가 있음
- 반원 세 개를 이어붙인 삼산관은 신라에서 제작된 반가사유상에만 고유하게 발견되는 형태임
- 높이 90.8cm, 무게 112.2kg
- 조형적으로 둥근 선이 강조되어 입체성이 뚜렷하며, 보살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미묘한 움직임을 표현하여 상 전체에 생동감을 줌[그림 10] ⇔ 단, 연화 족좌 위의 왼쪽 발은 매우 경직된 모습인데 이는 후대에 보수되었기 때문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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