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【한국사】 14. 삼국통일 (676년) 본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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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제의 멸망 (660년)

6세기에서 7세기 초: 십자외교[그림 1]
- 신라 진덕여왕 시기 심각한 외교적 고립 ⇒ 당나라에 적극적인 협조 요청(중화식 제도 도입) + 왕권강화책(김춘추)
- 십자외교: 돌궐-고구려 + 백제-일본의 반(反)신라 연대

7세기: 나당연합[그림 2]
- 김춘추와 연개소문의 담판: 고구려 보장왕의 무리한 요구(죽령 이북 땅 반환)로 인한 파기 → 이후 당나라에 접선
- 648년 신라 김춘추와 당 이세민(당태종)의 이해관계로 결성한 동맹
- 649년, 당 고종 즉위시 백제에 신라의 성을 돌려줄 것을 요구함 → 신라 공격시 당의 개입을 천명
백제의 멸망
648년 나당연합으로 인해 백제의 상황이 급변한다.
- 백제의 독자 노선: 당의 신라 영토 반환 요구를 거절
- 652년, 당나라에 백제 사신 마지막으로 파견 + 고구려와의 동맹관계 강화 ⇒ 당나라와의 대립 자초
- 나당연합군의 침공: 신라의 김유신과 당의 소정방이 백제 수도 사비성으로 진격 열흘만에 함락(660)
백제 부흥 운동

백제부흥운동: 백제 멸망 이후 백제를 부흥시키려고 했던 정치적 움직임[그림 3]
- 임존성(흑치상지, 지수신): 흑치상지가 당에 투항하며 이후 배신하여 임존성을 함락
- 주류성(복신, 도침): 백제왕 부여풍(풍왕)이 수도로 삼음
- 백강전투: 663년 백강과 주류성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⇒ 나당연합군이 백제-왜-탐라 연합군의 공세를 격퇴
고구려의 멸망 (668년)
보장왕<제28대> 시기 당태종의 침공(645)
- 원인: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영류왕이 시해되고 이를 빌미로 당의 이세민이 침공
- 신성, 건안성, 안시성에서의 전투 승리 → 고구려의 승리
당고종의 침공(661)
- 원인: 당 고종의 고구려 원정
- 신라의 김인문과 당의 소정방, 계필하력 등이 지휘관으로 참전
- 사수 전투 등에서 승리하며 나당연합군의 진격 저지
당고종의 2차침공(667-668)
- 원인: 연개소문의 장남인 연남생이 대막리지에 오르자 이를 시기한 동생(연남건, 연남산)이 권력투쟁을 통해 연남생을 평양성에서 몰아냄 → 당에 투항하며 군사지원을 요청
- 신라의 문무왕, 김인문과 당의 이세적(총사령관), 설인귀, 계필하력 등이 지휘관으로 참전(667)
- 평양성 포위전(668) ⇒ 나당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멸망
고구려 부흥 운동
고구려부흥운동: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를 부흥시키려한 정치적 움직임[그림 3]
- 오골성(고연무)
- 한성(검모잠): 고구려의 왕족인 안승을 왕으로 추대함, 한성은 현재 황해도 인근 지역
- 금마저(안승): 안승은 초기 검모잠 등에 의해 한성에서 추대되어 고구려 부흥운동을 주도했으나 당에 의해 축출되었고, 이후 남쪽으로 달아나 신라 영토인 금마저(익산)에서 보덕왕*으로 추대
보덕국
백제 제2의 수도였던 익산에 신라가 세운 고구려의 후계국으로 신라가 이후 당과 결전을 벌일 때 당과 싸우기 위해 고구려인들과 협력하는 차원에서 세운 국가
당의 야욕과 나당전쟁


나당전쟁: 당이 고구려, 백제, 신라의 중심지역에 도독/도호부를 설치[그림 5]하자, 이에 반발하여 670년 신라-고구려 부흥군 연합이 요동을 선제공격함으로써 발생한 전쟁
- 당의 야욕: 문무왕을 계림대도독으로 임명 ⇒ 신라를 당나라로 편입시키려는 의도
- 신라의 전쟁준비: 신라의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군의 고연무의 요동 오골성 공격
- 매소성 전투(675)와 기벌포 전투(676)에서의 승리 ⇒ 신라의 삼국통일 완성 (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의 이남통합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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