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격증/한국사능력검정시험

주제로 본 역사: 한글의 역사

herald-lab 2022. 6. 14. 10:15
728x90
반응형
 

 

세종

 

1418, 조선 세종 즉위

1420, 집현전 확장

 집현전의 역사

1399(정종 1년), 집현전 설치 후 경적의 강론 담당

1420(세종 2년), 집현전 확대 및 개편 → 경전, 역사 강론 및 임금 자문 담당

1456(세조 1년), 단종 복위 운동을 한 사육신들에 의해 집현전 폐지 + 경연 정지

세조 이후 집현전의 역할은 홍문관(또는 옥당)(성종)과 규장각(정조)이 이어 받음

훈민정음(국보 제70호)

 

1433, 훈민정음 창제(단, 한글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1908년 주시경에 의해서임)

1444,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 반대 상소 ⇒ 갑자상소문(아래 내용 참조)

- 중국의 한자와 방식이 다르다.

- 새로운 문자 제작은 오랑캐의 짓이다.

- 원래 존재한 이두는 조악하나 한자를 배우는 데 쉽다.

- 논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글자를 만든 후 운서를 고치는 것은 옳지 않다.

- 세자(문종)가 해야 할 다른 일이 많은데 훈민정음 창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.

용비어천가(보물 제1463호)

 

1445, <<용비어천가>> 편찬 → 완성(1447): 권제, 정인지 등이 본문을 지음, 훈민정음으로 작성한 최초의 책

- 조선 왕조의 건국 정당성을 선전(국문가사-한역가-한문 주석 구성)

1446, 훈민정음 해례본 반포

석보상절(보물 제523호)

 

1447, 수양대군(세조)이 김수온과 함께 <<석보상절>> 편찬

- 세종의 정실인 소헌왕후의 사망 후 수양대군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자 석보를 제작

- 한글 활자로는 ㅏ, ㅗ, ㅓ, ㅜ 등이 발견되는데 과거에는 짧은 막대기에 동그라미를 합친 모양이었음

1448, 세종, 집현전에 사서(四書) 번역을 명함

1450.4.8, 세종 사망

월인석보

 

1459(세조 5년), <<월인석보>> 간행 ⇒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의 한국어 불경으로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정수, 훈민정음의 변천사 확인 가능

삼강행실도언해

 

1481(성종 12년), 한문본 삼강행실도(세종 16년)의 내용을 대폭 줄이고, 한글로 우리말 번역을 붙인 <<삼강행실도언해>> 발간

1504(연산군 10년),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글 문서 사건이 발발 → 연산군의 한글 탄압(한글 가르치기 금지 및 한글서적 분서)

훈몽자회

 

1527(중종 22년), 역관이자 중국어학의 대가인 최세진이 어린학동들을 위해 <<훈몽자회>> 편찬

- 생활 주변에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에 관한 글자를 다수 수록

- 한자 3,360자의 뜻과 음을 훈민정음을 사용해 달아 놓음

- 현재는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보관

1536(중종 31년), 양주 영비각자(최초의 한글 금석문)

양주 영비각자

 

- 당대 문필이었던 이문건이 부친인 이윤탁의 묘를 합장하면서 1536년 묘 앞에 세운 묘비

1585(선조 18년), 교정청 설치

1587(선조 20년), 교정청에서 <<소학언해>> 발간

- 성리학의 주요 경전 중 하나인 소학(주자 지음)을 한글로 풀어낸 책

- ㅿ에 해당하는 발음이 이 당시 이미 소실되었음을 확인 +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방점의 표기도 매우 불규칙하여 이미 방점의 체계가 흔들림을 확인

소학언해

 

1590(선조 23년), 교정청에서 <<논어>>, <<맹자>>, <<중용>>, <<대학>> 번역

1675(숙종 1년), 공문서에 한글사용 금지

1678(숙종 4년), 조선 후기의 문신 최석정이 <<경세정운>> 작성 ⇒ 훈민정음의 기원을 해설

1797(정조 21년), <<오륜행실도>> 편찬

728x90
반응형